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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감상평

헤드윅

Wicked little town이 흘러나오는데 오랜만에 헤드윅이 생각났다. Origin of love와 Wicked little town 만큼 헤드윅을 잘 나타내는 노래는 없는 것 같다. 아마 이 두 곡이 내가 헤드윅을 느끼는 방식일지도.
며칠 전에 누가 나에게 묻는다. 언제 화를 내냐고. 아주 곰곰히 생각해보았는데 나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가끔가다 손발이 차가워지고 가슴이 뛰고 밤새 잠을 못 이룰만큼 흥분되면서 분노할 때는 있지만, 그에 비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내고 투정부리는 것은 화까지는 아니고 그저 귀여운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분노하는 대상은 주로 무형의 대상이다. 예를 들면 지난 겨울 무언가에 화가 나 자보를 썼고, 학생들에 화가 나 투서를 썼으며,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며 국가와 사람들의 태도에 분노했고, 한의대의 부조리함을 그냥 그렇게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사람들과 구조적 모순에 분노한다.
오히려 주변 사람에게는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는다. 아니 그래야 후회가 없다. 하지 않은 일은 나중에 좀 더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언제든 할 수 있다. 신중해서 나쁠 것은 없다. 기회와 타이밍이란 인생에 한 번만 있는 것은 아니므로. 하지만 엎질러진 물을 담는 것은 아무리 해도 감쪽같을 수가 없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그래도 내가 항상 말하는 것처럼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그 상처를 완전히 치료하고 예쁜 문신을 수놓는 것이다. 그것은 상처가 나기 전보다 더 아름답다.
하지만 어쨌든 난 상처를 거리낌없이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참는 것도 하나의 성격일 뿐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아주 어릴 때 이후로 몸살이 날 만큼 맞아본 적이 없어서 물리적 폭력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언어 폭력도 그에 못지 않다. 그리고 꼭 말이 아니더라도 폭력일 수 있다. 나는 그 폭력에 당하면 갑자기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해진다. 몇 시간이고 멍하니 누워있고, 앉아있고, 내가 에너지를 쏟았던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으며, 온 마음이 아프고, 갑자기 몸은 일으킬 수 없을 만큼 처지며, 울고, 갑자기 너무 외롭고 서럽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고 무작정 떠나버리고 싶어지며, 사랑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순식간에 생명력을 잃은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 폭력으로 인한 마음의 몸살은 엄청나다.
오늘도 참고 견딘다. 나는 단련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삭아가고 있는 걸까. 헤드윅을 보면 꾹꾹 눌러왔던 그 참을 忍 자를 공유하는 느낌이어서 서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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