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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잔인한 여호와

  구약의 여호와를 보면 인류 단위로, 민족 단위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등 어떤 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잔인한' 민족신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한 주장을 염두에 두고 구약을 읽어나가다 보면 정말 자비하다고 하는 신이 생각보다 너무 무자비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런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 구체적인 나의 삶의 맥락과 분리해서 성경을 읽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베드로후서 2장을 보면 '무법한 자들의 방탕한 행동 때문에 괴로움을 겪던 의로운 사람 롯은 구하여 내셨습니다. 그 의인은 그들 가운데서 살면서, 보고 듣는 그들의 불의한 행실 때문에 날마다 그의 의로운 영혼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경건한 사람을 시련에서 건져내시고, 불의한 사람을 벌하셔서, 심판 날까지 가주어두실 줄을 아십니다.'라고 한다. 그동안 구약의 이야기에서 내 생각을 묶어두었던 건 '기독교인만 의인인가? 결국 기독교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주장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었다. 지금 와서 보니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싶다. 사실 성경을 포함한 동서양의 많은 고전에서는 경건하고 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엉망인 세태를 보며 탄식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가. 노아나 롯도 그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구약의 심판들도, 베드로후서 2장의 본문도 '불신지옥'이 포인트가 아니라, 죄를 심판하는 절대자가 있으니 너는 너무 분노하거나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메세지로 볼 수 있다.
  나의 구체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 적용해보자면 일상에서 짜증나고 노답이고 절대 의로워질 수 없을 것만 같은 많은 사람들을 더욱 애타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심판자는 내가 아니고 절대자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저 절대자 앞에서 심판받을 것이 두려워 옆에 있는 사람과 애타는 마음으로 더 정진하며 살고자, 그리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더욱 불쌍히 여기고자 하는 소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심판은 형이상학적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선 가장 먼저 이 현실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 자비로운(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당장 그 사람의 불의는 다음 순간의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는다. 그 사람은 매일 이 번뇌 속에서 윤회하면서 끊을 줄 모르고 산다. 그것만으로도 매일매일 고통으로써 심판받는 삶을 사는 것인데, 내가 이 고통의 느낌을 함께 느낄 수 있으면 더욱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테지만.. 이것은 지금의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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