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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의서 읽는 법

의서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여느 책이나 다름 없게 대해서 감동적인 문장이 나오면 성경구절처럼 여러 번 마음에 새기기도 했었다. 예를 들면 습의규격에 나오는 '蓋人不能報면 天必報之하리니' 등. 그런데 언제부턴가 의서에서는 증상과 치법에만 줄 치고 나머지는 다 헛소리라고 넘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넉넉한 마음으로 다시 의서를 대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데, 아마 이것이 옛사람들이 의학을 대했던 마음일 것이다. 의사의 마음은 너의 영혼 잘 되도록 바라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어제는 이러한 문장을 배웠다.

夫生民之道, 莫不以養小爲大. 若無於小, 卒不成大, 故易稱積小以成大, 詩有厥初生民, 傳云: 聲子生隱公, 此之壹義, 卽是從微至著, 自少及長, 人情共見, 不待經史. 故今斯方先婦人小兒, 而後丈夫耆老者, 則是崇本之義也.(의방유취 소아문 - 천금방 서례)

 

모두가 작고 취약한 어린이에서부터 시작해 어른이 되고 위인이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귀중한 어린이를 소중히 대할 줄은 몰랐다. 어린이를 소중하게 대하기 시작한 것은 역사상 얼마 되지 않았다. 구한말이 되어서야 소아, 소년 등을 어린'이'로 부르기 시작했고, 그전까지는 작고 약하고 무력하다는 이유로 천대받았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생각해볼 때 이미 唐대에 위와 같은 문장이 나왔다는 것은 굉장히 시대를 앞서간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천금방에서 부인, 소아문을 앞에 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라고 분명히 밝힌다.

 

今之學者, 多不存意, 良由嬰兒在於襁褓之內, 乳氣腥臊, 醫者操行英雄, 詎肯瞻視, 靜言思之, 可爲太息者矣.(의방유취 소아문 - 천금방 서례)

 

금전, 명예만 좇아 가치가 없어 보이고 다루기 까다로운 환자는 다루지 않는 당대의 의사들을 비판한다.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히 크게 탄식할 일이다.

 

교회나 일반적으로 현대 한국 사회에서 접할 수 있는 철학은 대부분 서양의 것이 전부였다. 여기는 한국 땅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항상 서양철학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이렇게 동양 고전문헌에 대한 접근성을 갖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수많은 신학서적이 성경의 부교재로 읽히고 있다면, 동양고전 내지는 동양의 경전 또한 그래야 할 것이며 배제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나는 동양 고전인 의서를 읽는 법으로부터 성경을 읽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예를 들면 동의보감의 전녀위남법, 은형법 등을 읽어내는 방법과, 디모데전서 2장 11-14절(여자는 조용히, 언제나 순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 사실, 아담이 먼저 지으심을 받고, 그 다음에 하와가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아담이 속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임을 당하고 죄에 빠진 것입니다.)을 읽어내는 방법은 비슷하다. 성경을 해석하는 자들이나 의사들은 텍스트 해석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폭력과 권력을 행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